디자인은 내게 직업이기 전에 삶의 언어다.
처음엔 그것이 그토록 깊고 오래 갈 줄 몰랐다.
2004년, 제품디자인이라는 걸 처음 제대로 시작했을 땐
그저 ‘잘 보이는 결과물’을 만드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그때는 설계 도면보다 사람 얼굴을 더 보기 어려웠고,
책상 위 도구들이 삶의 중심이었다.
디자인은 멋진 폼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사용자는 늘 도면의 바깥에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어느새 나는 디자인 회사의 대표가 되었고,
수많은 프로젝트와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디자인이란 ‘의자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의자에 앉기까지의 시간’을 포함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디자인은 조용한 일이다.
누군가는 "크게 성공한 제품을 보여달라"고 말하지만
나는 가끔 이렇게 답한다.
“불편함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든 것이 내가 한 일입니다.”
세상은 화려한 디자인을 말하지만
내가 마음을 다해 만든 것들은 대부분 작고, 평범하다.
한 손으로 조작하기 쉬운 리모컨,
몸이 불편한 사람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
카페에서 주문할 때 당황하지 않게 설계된 디지털 키오스크.
이런 것들엔 ‘혁신’이란 단어가 붙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는 그게 디자인의 본질이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덜 복잡하게 만들고,
한 사람의 표정을 조금 부드럽게 바꾸는 것.
지금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면 가장 먼저 묻는다.
“이걸 왜 만들어야 하죠?”
겉모양이나 사양보다, 그것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먼저 찾아야
디자인은 길을 잃지 않는다.
이 질문은 스스로에게도 계속 던져왔다.
“나는 왜 아직도 디자인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 답은 명확하다.
세상이 말하지 않는 불편을 찾는 일이 내겐 중요했고,
그 불편을 조용히 줄여나가는 과정이
나를 계속 이 자리에 붙들어두었다.
디자인은 거창한 영감보다도, 지독한 관찰력에 더 가까운 일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컵을 들고,
버튼을 언제 눌러야 편한지,
혼자 살거나 나이 든 사람이 어떤 속도로 생활하는지를
묵묵히 들여다보는 일.
그 끝에야 비로소 ‘좋은 디자인’이 얼굴을 내민다.
디자인을 한다는 건,
늘 답을 찾기보다는 질문을 품는 일 같기도 하다.
정확한 한 줄의 정답보다는
수많은 실험과 실패, 수정과 재검토.
그리고 그 와중에도 누군가를 위해 손끝을 다듬는 일.
어느 날 문득,
내가 디자인한 어떤 기기에서
사용자의 손이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도 그것이 ‘잘 디자인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자연스러움이야말로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하루에 아주 작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하나의 버튼을 다시 그리고,
한 줄의 곡선을 조정하며,
사람들 곁에 조용히 머무는 디자인을 만든다.
그게 내가 믿는 디자인이다.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히 일상을 바꾸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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