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의 디자인

 


고령화는 더 이상 특정 국가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은 감소하면서, 인류는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을 기점으로 60세 이상의 인구 수가 5세 미만 아동의 수를 초과했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경우,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에는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인구 구조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시스템과 서비스, 제품의 전환을 요구한다. 특히, 디자인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1. 고령화와 디자인의 관계

디자인은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하지만 디자인의 대상을 전통적인 ‘젊고 활동적인 사용자’로만 한정한다면, 고령사회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고령자는 신체적, 인지적 변화로 인해 기존 제품이나 환경에서 소외될 수 있으며, 이는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따라서 ‘모든 세대를 포용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노인 전용 제품을 만들자는 의미가 아니라, 고령자도 존중받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디자인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2. 고령자의 특성과 디자인적 고려

고령자는 개인에 따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조건이 다양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고려할 수 있다.

-시각 변화: 노안, 백내장, 색각 저하 등으로 인해 작은 글씨나 낮은 대비의 정보를 인식하기 어렵다.

-청각 저하: 고음역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알림음이나 음성 안내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운동 능력 감소: 관절의 유연성과 근력이 저하되어 조작이 복잡한 기기나 제품은 사용이 어렵다.

-인지 능력의 변화: 단기 기억력의 감소나 정보 처리 속도의 저하로 인해 복잡한 정보 전달이나 절차는 혼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디자인에서 구체적인 적용 지침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버튼 크기를 키우고, 명확한 색상 대비를 사용하며, 단순하고 직관적인 흐름으로 정보를 구성해야 한다.

3. 고령친화 디자인의 실제 사례

세계 여러 디자인 기업과 기관들은 이미 고령친화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 교토: 일본은 고령화에 가장 먼저 직면한 나라 중 하나로, 교토시는 도시 전체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공공 버스에 휠체어 접근을 고려한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보행자 신호음에 다양한 톤을 활용해 청각장애인과 고령자의 안전한 이동을 도왔다.

-OXO의 생활용품: 미국의 생활용품 브랜드 OXO는 손잡이가 미끄럽지 않고, 적절한 크기와 재질로 되어 있어 손힘이 약한 사용자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원래는 관절염 환자를 위한 주방용품으로 시작했지만, 디자인의 보편성이 인정되어 전 연령층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유니버설 디자인 사례가 되었다.

-삼성전자 고령자 전용 스마트폰 UI: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고령층을 위한 스마트폰 UI를 개발해 왔다. 큰 아이콘, 단순한 메뉴 구성, 화면 내 확대 기능 등은 고령 사용자의 접근성과 만족도를 높였다.

4. 서비스 디자인과 고령화

고령화 시대의 디자인은 물리적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비스 디자인은 고령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병원 예약 시스템, 약 복용 알림, 대중교통 연계 서비스, 지역사회 커뮤니티 플랫폼 등은 고령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특히 디지털 전환 시대에 고령자의 디지털 접근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스마트폰이 필수화되면서 은행 업무, 병원 예약, 행정 절차 등 많은 일상 기능이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디지털 문맹' 고령자를 위한 교육 서비스와, 고령자를 고려한 직관적인 디지털 환경 설계가 절실하다.

5. 참여형 디자인: 고령자를 '사용자'가 아닌 '디자이너'로

디자인은 더 이상 디자이너가 일방적으로 제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고령친화 디자인에서는 사용자 참여가 필수적이다. 고령자의 실제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경험과 의견을 디자인 프로세스에 반영함으로써 더욱 실효성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참여형 디자인'(Participatory Design) 또는 '공동창작'(Co-creation)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고령자와 디자이너, 개발자가 함께 워크숍을 열고, 제품이나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을 함께 평가하고 개선해 나가는 방식이다. 이는 고령자의 자존감 향상은 물론, 현실적인 디자인 솔루션 도출에도 효과적이다.

6. 고령화 시대의 디자인 윤리

고령친화 디자인은 단순한 편의 제공을 넘어선 윤리적 책임이다. 고령자는 단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한 삶의 주체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디자인은 자율성과 사회 참여를 확대하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실제로 디자인 윤리를 지키지 않은 사례는 부작용을 낳는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부 제품이 과도하게 단순화되거나 유아용처럼 보일 경우, 오히려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사용을 꺼리게 만든다. 따라서 고령친화 디자인은 ‘배려’와 ‘존중’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7. 미래를 위한 디자인 과제

앞으로 디자인은 더욱 능동적으로 고령사회의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고령자를 위한 물리적·디지털 환경의 정비가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고령화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디자인 패러다임이 형성되어야 한다.

-새로운 주거 형태 디자인: 고립을 방지하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공유형 고령자 주택.

-노후 노동과 여가의 접점: 은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소와 도구의 디자인.

-세대통합형 공공공간: 어린이, 청년, 고령자 모두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원, 문화 공간의 설계.

이러한 방향은 단지 고령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고령친화 디자인은 ‘사람 중심 디자인’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결론

고령화 시대의 디자인은 단순한 문제 해결을 넘어, 사회적 연대와 존엄성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고령자를 위한 디자인은 젊은 세대에게도 도움이 되고, 지금의 ‘청년’이 미래의 ‘노년’이 되는 것을 고려할 때, 누구에게나 유효한 철학이다.

이제 디자이너는 더 이상 특정 타겟만을 위한 미적·기능적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삶의 다층적인 현실 속에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디자인을 실천해야 할 때다. 고령화 사회는 위기가 아니라 디자인이 새롭게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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